책 이야기/기독교

다시 길을 찾다(IVP 영성의 보화 시리즈 / 브라이언 맥클라렌 / IVP)

SMK_JOO 2021. 4. 3. 21:18

다시 길을 찾다
(브라이언 맥클라렌 / IVP)

 

 

옛것은 구닥다리여서 요즘엔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옛부터 지금까지 존재하는 것들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리라. 오랜 세월의 훈련의 길들이 바쁘게 살아가는 현재의 삶에 자리잡는다면, 나의 삶에 스쳐지나가는 것들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리라. 커피를 마시는 일, 신문을 보는 일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훈련하는 것. 그것이 로렌스 형제가 말하던 하나님의 임재연습을 삶에서 해내는 모습인 것 같다. 

IVP 영성의 보화 시리즈를 한 번 다 읽어보자는 생각이 든다.

같이 보면 좋을 것 같은 책 : 오늘이라는 예배, 호당 선생, 일상을 말하다


1장 일상의 거룩함을 찾아서

 

신앙을 단순한 신념 체계로서가 아니라 삶의 방식으로 재발견해야 한다. 이는 양자택일이 아닌 양자긍정의 문제다. 영성이라는 용어는 일상의 거룩함이라는 조화의 뜻이 담겨 있다. 

 

1부… 길

 

2장 왜 영성 훈련이 중요한가

 

영성 훈련의 이유

  1. 인격 형성
  2. 삶에 대한 깨달음 추구
  3.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
  4. 삶의 방식을 좀더 의도적이고, 주의 깊으며, 통찰력 있게 재구성하는 것

 

  고통을 겪는 사람도 안락하게 지내는 사람도, 자신이 소유하기 원하는 인격과 실제로 소유한 인격 사이의 격차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영성 훈련은 그 격차를 좁히기 위해 우리가 능력껏 취하는 행동이다 .영성 훈련은 우리로 하여금 살아 있음을 실천하여 인간다워지게 하기에 인생 훈련 또는 인간성 훈련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것은 인격을 성숙시킬 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 기민하게 살아 있고 깨어 있게 하며 인간다워지게 한다. 

  살아 있음의 진정한 가치는 우리를 끊임없이 일으켜 세운다는 것이다. 

  영성 훈련은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사람이 되어 단순한 생존이 아닌 삶-비록 진정한, 풍성한, 성찰된, 의식 있는, 살 만한 가치가 있는, 멋진과 같은 형용사들로 제한적으로 표현할 수 밖에 없지만-을 경험하는 것이다.

영성 훈련은 눈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의 영광을 보고, 귀로 그분의 말씀을 듣고, 피부로 그분의 따뜻한 손길과 부드러운 포옹을 느낄 수 있도록 언제나 주의를 기울이는 것과 같다. 영성 훈련은 하나님의 임재로 밝아진 현재 순간에 머누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왔고, 하나님께로 가며, 하나님과 함께 이 길을 걷고 있다.  

 

3장 훈련의 기원

 

  7가지 고대 영성 훈련인 정기적인 기도, 금식, 안식, 거룩한 식사, 순례, 거룩한 절기 준수, 헌금은 주요 아브라함 종교 전통들이 공유하는 훈련이다.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의 공통적 근원은 잘 알려져 있으면서도 신비스러운 한 인물, 즉 우르의 아브라함이라 불리는 중동사람이다. 세 가지 아브라함 종교가 미지의 땅을 향한 여정에서 출발했다는 것은 얼마나 적절한가.

믿음의 사람들은 일상 생활을 정기적으로 중단하고, 익숙한 곳을 떠나 불편과 긴장을 의도적으로 경험했다. 순례는 그들에게 회복, 새생명 혹은 말 그대로 통과의례가 된다. 

  온전한 금식이든 부분적 금식이든, 정상적인 식사를 멈추는 것은 일종의 식이요법 순례가 된다. 이것은 우리가 매일의 리듬에 묻혀 방심하지 않게 하며, 습관이 중독이 되거나 부엌이 감옥이 되지 않게 하는 방법이다. 또 사순절이나 라마단, 혹은 속죄일과 관련한 금식의 경우는 특별한 목적을 지닌 실천이다. 

  아브라함과 멜기세덱이 함께 먹었던 떡과 포도주는 거룩한 식사의 전형이다. 종교적 전통이 다른 두 민족을 하나로 만든 평화와 교제의 식사였다. 이런 맥락에서 거룩한 식사는 환대, 공동체, 포용, 화해의 축제다. 

  매일 기도하는 습관과 노력이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는 시간을 규칙적으로 가질 수 있기 때문이며, 또한 공동체에서 기도를 나누고 계속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신실한 사람들은 정기적으로 일정액의 헌금을 드림으로써 관대한 삶을 습관화했다. 이러한 영성 훈련을 통해, 우리는 계속해서 가난한 이들을 기억하게 되고, 그들을 기생하는 존재나 실패한 존재로서가 아니라 존귀한 가족의 일원이자 보살펴야 할 구성원으로 공동체에 받아들이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쉼을 주시는 분이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일과 휴식의 리듬이 있다. 

  다양한 교회력의 근원인 이 절기들은 우리 인생이 달과 계절의 순환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녀들에게 신앙 공동체의 역사를 들려주는 특별한 기회로 가득 차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한 절기들을 통해 우리의 과거는 미래가 되고 고대의 길과 훈련은 매년 새롭게 재발견된다. 

 

4장 예수님의 길

 

  나는 예수님을 따른다. 나는 예수님을 닮고자 하는 사람이며 하나님과 영성 훈련에 대한 나의 관점은 예수님의 삶, 메시지, 사명과 관련하여 형성되었다.

  예수님은 새로운 종교를 창설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다. 그분은 새로운 나라를 선포하기 위해 오셨다. 그분은 몸소 길이 되셨다. 그리고 “나는 길이다. 내가 사랑한 것같이 사랑하라. 나는 너희가 행해야 할 본을 보였다.”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인’이나 ‘개종자’를 만드시지 않는다. 그분은 제자를 부르시고, 다음 사역을 이루어 가도록 그들을 보내신다. 그분이 기대하시는 사역은, 그 길을 배워 다른 사람들에게 본을 보이고 그것을 가르쳐 그들도 똑같은 일을 행하게 하는 것이다. 

 

5장 바울과 사랑의 길 

 

  우리는 바울에 비추어 예수님을 이해하는 대신, 예수님에 비추어 바울을 이해해야 한다. 연습이나 훈련이 없다면 우리는 변화를 경험할 수 없다. 그러나 연습이나 훈련만으로 변화를 창출할 수도 없다. 절대적으로 필요한 또 다른 한 가지는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은혜, 성령으로 다양하게 나타나는 능력 부여다. 

  바울을 성경 이야기의 절정인 예수님과의 연속성 속에서 바라볼 때에만, 우리는 그의 진정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바울이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이었다는 것은 성경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새로운 길을 따르고 사람들을 인도하기 위해 모든 것을 감수했다. 

 

6장 나눔과 통합

 

  운동이 일종의 제도가 될 때, 마음의 소리를 따라 순례하는 이들은 어김없이 다시 길을 찾아 나선다. 새로운 통찰을 공식으로 전환시키려는 경향에 주의하기 위해, 우리는 기독교 신앙을 삶의 방식으로 이해하며 접근해야 한다. 

 

7장 오픈 소스 영성

 

  내가 배운 가장 중요한 훈련들은 모두 누군가 직접 본을 보이면서 나에게 그것을 설명해 주고, 시도해 보라고 격려하며, 내가 잘하고 있는지 가끔씩 점검해 주는 긴 과정을 통해 얻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신학교에 갈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이 수도원에서 살 수도 없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일깨울 수 있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진실하게 영적 생활의 훈련을 체득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말이다. 우리 각자가 영성 훈련이 오픈 소스가 되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삶을 살기를 기대해 본다. 

 

8장 가벼운 문제, 심각한 문제 

 

  목적지로 가는 길을 잃어버렸다면, 당신의 문제는 가벼운 축에 속한다. 하지만 방문할 곳의 주소를 잃어버렸다면, 당신의 문제는 심각한 것이다. 그리고 가야 할 목적지를 잊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다면, 당신은 쇠렌키에르케고르가 절망의 가장 깊은 수준이라고 말한 끝없는 심연에 있는 것이다. 

  신앙이 삶의 방식으로 나타나야 할 이유를 찾고 필요한 훈련들을 고찰해 보기 전에, 우리는 이러한 삶의 방식과 훈련을 통해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지가 어디인지 다시 한 번 점검해야 한다. 

  우리가 사다리를 놓을 수 있는 첫 번째 건물은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기 위해 이 세상에서 도피하는 것’이며, 두 번째 건물은 ‘개인적, 사회적 악으로부터 하나님과 협력하는 것’이다.

 

2부…훈련

 

9장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훈련

 

  트레이닝. 우리의 능력 범위 내에서 적절한 행동을 취함으로써 우리는 현재의 능력을 뛰어넘는 일을 할 수 있게 되며, 현재의 우리로서는 불가능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여기서 ‘적절한 행동’을 연습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또한 그 훈련을 가르치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전통을 지키는 훈련 공동체라 이름붙일 수 있을 것이다. 충동을 억제하는 작은 연습, 연약함을 직면하는 작은 연습, 그리고 영적이고 성숙한 체하는 나를 보며 웃을 수 있는 작은 연습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이 실현된 것이다. 어떤 이들은 연습이 완벽을 낳는다고 하는데, 그 점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연습은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10장 관상훈련

 

  우리가 인격의 군살을 빼고 덕을 강화시킬 필요성을 인정한다면, 나이를 먹어 가면서 우리가 넉넉하기보다 냉소적인 존재가 되어 간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우리는 영혼의 건강을 챙겨야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관상 훈련은 우리가 뜻밖의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는 매개체다. 또한 하나님이 주시기 원하는 선물들을 받을 수 있도록 우리 손을 펼치는 길이다. 

관상훈련

    • 고독, 안식, 침묵 : 아무 말도,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안식하는 것이다. 이는 사람들과 관련된 교제, 요구, 의문보다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친밀함을 더 깊이 인식하게 해준다.
    • 영적 독서와 연구 : 성경과 영적 저작들을 읽고 연구하면서 지성을 단련함으로써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 영성 지도 혹은 영적 우정 : 사적이고 비밀스러운 개인의 내면 생활을 멘토나 영적 친구와 나누는 가운데 영적 여정에서 지도와 책임감과 격려를 얻는 것이다. 
    • 하나님의 임재 연습 : 하나님을 변함없는 친구로 인식하고 늘 가까이 교제하면서, 영혼의 창을 하나님께 열어 놓은 채 살아가는 것이다.
    • 정기적인 기도 :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라는 오래된 찬송가 가사처럼, 하루의 특정한 시간을 정하여 공동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만나는 것이다. 
    • 기도 일기 : 기도를 글로 표현해 보고, 훈날 다시 볼 수 있도록 보관해 둔다. 
    • 관상 기도 : 침묵 가운데 하나님께 집중하는 기도를 연습하는 것이다. 이것은 말하고 표현하기보다 듣고 수용하는 기도다.
    • 섬김, 은밀함, 관대함 : 익명으로 다른 이들을 섬기고 나누어 주는 것이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마 6:3) 영성을 실천함으로써, 섬김을 받은 사람은 섬긴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그들은 고맙다는 말을 하거나 보답해야 한다는 책임감 없이 받을 수 있는 진정한 선물을 받은 것이다. 이러한 선물들은 필요가 있는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주어진 것일 뿐 아니라, 가난한 자들과 어려운 자들에게 베푼 친절이 그분에 대한 친절과 같다고 여기시는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기도 하다.
    • 단순함과 느림 : 옷, 음식, 교통 수단, 기술, 화법 등에서 단순하고 느린 삶을 의도적으로 선택하여 복잡성, 획득, 소비, 분주함의 힘에 저항하는 것이다.
    • 금식과 자기 부인 : 음식이나 다른 즐거움에 대한 소비를 줄이는 방식으로 영적 건강과 결단을 강화한다. 신앙 공동체가 특정한 날을 정하여 특정한 의미로 행하기도 한다.
    • 축제와 잔치 : 음식이나 다른 즐거움에 대한 소비를 늘리는 방식으로 영적 건강과 기쁨을 강화한다. 신앙 공동체가 특정한 날을 정하여 특정한 의미로 행하기도 한다.
    • 절기 : 평상적인 일과를 의도적으로 중단하고 특별한 날과 절기를 지키는 일이다. 이러한 특별한 날과 절기는 특별한 사건이나 교훈을 기억하게 하고, 신앙 공동체의 일원들에게 특정한 영성 훈련에 동참할 것을 독려하는 기능을 한다. 
    • 순종 : 인간의 연약함으로 인한, 혹은 불쾌한 상황들로 인한 한계들을 과감하게 인정하여 자기 의지와 교만을 누그러뜨리게 한다.
    • 감사 : 우리가 받은 축복을 헤아려 보며, 축복이 마치 권리인 것처럼 생각하거나 당연히 여기는 경향에 대항하는 것이다. 이는 식사 기도나 다른 형태의 기도들로 행해진다. 
    • 묵상과 기억 : 근심 없는 집중 가운데 어떤 진리를 마음에 새기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진리는 마음 가운데 깊이 뿌리를 내려, 일상의 고투와 스트레스 속에서도 기억을 통해 되살아난다.

 

11장 공동체 훈련

 

  관상의 길은 영혼의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향해 올라가는 위로의 여정이다. 행동의 길은 내면의 변화를 바깥 세상에 표현하는 바깥으로의 여정이다. 공동체의 길은 내 안이 아닌 우리 안으로 들어가는 안으로의 여정이다. 좀더 정확히 말한다면 이 세 가지 여정은 모두 하나님을 향한 모험이다. 

 

출석훈련

 

불편. 어딘가에 출석한다는 것은 정말 불편한 일이다. 그것은 내가 선택한 목적을 위해 내가 선택하지 않은 시간에 내가 선택하지 않은 장소로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목적-삶의 방식을 배우고 실천한는 것-에 대한 나의 헌신은 내가 교회에 출석하는 동기가 된다. 

자기 준비. 

환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공동체 훈련이다. 

 

참여 훈련

 

침묵. 모임 장소가 어디든 우리는 그 안에서 침묵을 훈련할 수 있다. 그것은 진실한 경청을 위해 내면의 소리를 잠잠하게 하는 것이고, 순전한 참여와 깨달음을 위해 분주함과 걱정을 잠재우는 것이다. 

기원. 이상하게도 우리의 많은 기원은 우스꽝스러운 것을 구한다. 우리는 마치 하나님이 아직 임재하지 않으신 것처럼 하나님의 임재를 구한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임재 가운데 들어간다고 고백한다. 기원이란, 언제나 진리인 실재에 대해 우리가 공동체로서 함께 의도적으로 깨어 있기를 구하는 수단이다. 

찬양. 

 

듣는 훈련

 

경청. 설교를 준비하는 것과 설교를 듣는 것은 성경, 신앙 공동체, 자신의 영혼, 자신이 속해 있는 더 큰 세계에 주의를 기울이고, 하나님이 무엇을 통해 말씀하시는지 경청하는 것이다. 

해석과 분별. 

고백 그리고 용서에 대한 확신. 

은혜로우신 하나님, 

우리 죄는 너무 무거워 감당할 수 없고

너무 분명해 숨길 수 없고

너무 깊어 지울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입술을 떨며 말하는 것, 

우리가 더 이상 마음에 담아둘 수 없는 것,

우리가 심판의 소멸하는 불을 일으키는 불씨였던 것을 용서하소서. 

바꿀 수 없는 과거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고

바꿀 수 있는 미래로 우리를 인도하소서.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통해

당신을 닮아가며 성장할 수 있는 은혜를 우리에게 주옵소서. 아멘.

 

12장 사명훈련

 

  신앙 공동체가 모이는 목적은 흩어졌을 때도 그 구성원들이 사랑과 선행의 삶을 살도록 준비시키는데 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

 

13장 우리는 어떤 순환 속에 있는가

 

  우리가 길을 잃는다면 다음 세대를 놓치게 될 것이며, 그렇게 몇 세대가 지나면 분명 소멸의 위기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14장 앞으로 나아가는 삶

 

  교회가 더 이상 배우기를 원치 않을 때 하나님은 방해가 되는 그 구조 바깥으로 흘러넘치셔서 기꺼이 배우고자 하는 이들과 역사하신다. 훈련은 똑똑한 척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훈련은 변화와 성장과 발전과 배움의 필요를 느끼는 사람을 위한 것이며, 또한 제자를 위한 것이다. 

 

15장 고대의 길

 

  교회가 훈련을 위한 학교가 될 때 역사를 창조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

 

고대의 세가지 길

  정화의 길은 자기 점검이 이루어지는 차원이다. 우리 안에 널리 퍼져 있으며,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자기 점검을 통해 정화, 속죄, 정결, 자유, 변화를 추구하게 된다.

  조명의 길은 하나님의 진리, 성품, 생기, 사랑의 빛을 우리 삶 속에 받아들이는 계몽의 차원이다. 조명의 길은 하나님의 빛으로 우리의 생각과 상상력을 깨어나게 하고, 우리의 마음과 에너지를 뜨겁게 하는 것이다. 

  일치의 길은 하나님과 우리 존재를 일치시키는 차원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면 그분이 우리를 채워 주신다. 이 과정에서 우리와 하나님의 뜻, 감정, 생각, 말, 행동은 분명한 일치를 경험한다. 우리 인격은 이러한 일치를 통해 상실되는 것이 아니라 더 성숙해지고 거룩해진다. 

고대의 일곱 가지 영성 훈련은 고대의 세 가지 길과 자 들어맞는다. 금식, 순례, 매일의 기도, 일주일 중 하루의 안식, 연간 성일과 절기, 십일조, 거룩한 식사는 정화와 조명, 그리고 하나님과의 일치에 각각 기여하는 점이 있다. 

 

16장 정화의 길(카타르시스)

 

  고대의 성인들은 영혼에 들어오는 빛을 차단하는 세 가지 요소를 알고 있었다고 대수녀원장은 말한다. 첫째는 교만으로, 이것은 자신과 자신의 힘에 대한 집착이다. 둘째는 정욕으로, 일반적으로 말하면 즐거움에 대한 집착이며,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성적 쾌락에 대한 집착이다. 셋째는 탐욕으로, 이것은 돈과 소유에 대한 집착이다. 

  고대 영성 훈련을 시작한 수행자는 고대의 길을 통해 탐욕, 정욕, 교만을 직시하면서 무서운 영향력과 지독한 복원력을 발견한다. 

  일기를 쓰는 것도 정화의 길을 실천하는 좋은 방법이다.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세 가지 영적 위험이 드러났던 사건들을 매일 적어 보는 것이다. 금식과 같은 특별한 도전을 시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러한 훈련은 교만, 탐욕, 정욕이 틈타지 못하게 하고, 영혼에 어두움을 드리우는 것을 막아 준다. 예를 들어 한 달 동안 교만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면, 비판을 받았을 때 자기 변명을 하지 않겠다고, 혹은 한 주 동안 농담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할 수 있다. 

  정화는 죄의 대가를 치른다는 의미의 속죄와는 전혀 무관하다. 하나님의 제자는 은혜로 말미암아 용서와 구원을 얻었음을 알기에, 지불이나 획득과 같은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정화는 속죄보다는 훈련에 가깝다. 

정욕, 탐욕, 교만과 대항해 정직한 싸움을 해 온 사람이라면 결코 교만해질 수 없다. 교만은 가장 위험한 어두움인 것이다.

 

17장 조명의 길(포토시스)

 

  조명의 길은 우리 영혼을 오랫동안 가리고 있던 판자와 커튼을 걷어 낸 뒤에 빛을 받아들이는 과정입니다. 빛이 있기 때문에 볼 수 있는 것이지요. 영적인 삶은 여러 가지 면에서 보는 일과 흡사합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우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 하겠느냐”(마 6:22~23)

  조명의 길은 모든 것을 한나님의 빛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돈, 시간, 재산, 병, 시험, 실패, 다른 생명체, 땅, 하늘, 죽음과 같은 것들이요.

  삼중의 길에서 두 번째 차원은, 하나님의 빛이 우리 영혼과 존재와 삶 속에 들어오게 하는 것이다. 조명, ‘포토시스’, 깨달음의 훈련에 참여하여 하나님의 빛이 우리 정신 속에 스며들게 하는 것이다. 

  그러한 훈련의 한 가지 예가 바로 연구다. 성경을 연구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지만 영적 저작들을 연구하는 일도 중요하다. 연구를 통해 우리 정신은하나님의 빛을 받아들인다. 

  관상은 그 빛 안에 거하면서 평화롭고 고요하게 그것을 수용하는 것이다. ‘렉티오 디비나’ 혹은 영적 독서란, 우리 정신이 진리의 빛을 받아들이고 감정이 사랑의 빛을 받아들이며 의지가 초청과 명령의 빛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하나님의 임재 연습은 어디서 무엇을 하든 우리 눈을 그 빛에 맞추는 행위를 말한다. 교제는 다른 사람에게 있는 빛을 분별하는 것이며, 예배는 그 빛 가운데서 노래하고 춤추며 그것을 흠뻑 내리쬐는 것이다. 

  수도원 공동체가 하루에 몇 번씩 일상을 중단하는 것은 덜 중요한 ‘영적’일로 더 중요한 ‘세속적’인 일을 방해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매일의 리듬은 온전히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일과 기도를 통합시키려는 시도다. 

 

18장 일치의 길(테오시스)

 

  정화의 길이 조명의 길의 준비 단계이듯, 조명의 길은 우리의 본성을 하나님의 본성에 일치시키는 일치의 길의 준비 단계라고 그녀는 말했다. 

  우리는 기쁨으로 하나님과 결합하기 원한다. 우리는 하나님과 나눌 수 없는 그 어떤 행복도 원하지 않으며, 모든 작은 것에서 하나님의 기쁨을 공유하기 원한다. 우리는 사랑으로 하나님과 결합하기 원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살아하시는 것을 사랑하시고, 하나님이 사랑하시지 않는 것-교만, 잔인함, 공포, 무관심, 그 외의 나쁜 모든 것들-을 미워하기 원한다. 우리는 행동으로 하나님과 결합하기 원한다. 창조하고, 섬기고, 치유하고, 공감하고, 반대하고, 직면하고, 변화시키고, 기다리고, 선택하고, 격려함으로 하나님과 결합하기 원한다.

  우리는 고통으로 하나님과 결합하기 원한다. 철학자들의 신인 ‘테오스’에 대한 헬리인들의 이해와는 정반대로,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의 하나님은 공감하고 고통당하시는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잊혀진다면 우리 역시 잊혀짐으로써 하나님과 결합하기 원한다. 하나님이 거절과 반대와 오해와 왜곡된 진술로 고통을 겪으실 때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그 모든 모욕과 슬픔의 고통을 겪기 원한다. 우리가 고통을 감당하는 것은 그것이 즐거워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고통을 선택하는 것은 하나님의 고통에서 멀어지는 것이 일치의 길에 역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안식과 경축으로 하나님과 결합하기 원한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의 두뇌와 심장, 뼈와 살이 쇠하는 날이 오면 죽음으로 하나님과 결합해 왔듯이 말이다. 그렇다! 이생의 삶은 달콤했다. 우리는 모든 호흡과 맥박과 선택으로써 삶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우리 삶이 심장과 허파와 손과 두뇌로 유지될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오면,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던 이 세상의 삶을 보내고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저 세상의 삶으로써 하나님과 결합해야 한다. 삶과 죽음으로 하나님과 결합한다는 것은 분명 서로 다르지만, 하나님과 함께 있고, 하나님과 결합하고, 더 깊은 빛 속으로 들어간다는 면에서는 같다고 할 수 있다.

 

19장 훈련에 대한 신뢰

 

  고대의 길과 훈련의 목적은 우리를 더 종교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안다. 우리로 하여금 더욱 깨어 있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을 향해 깨어 있도록. 정화의 길, 조명의 길, 일치의 길이 이르는 종착역은 보는 것으로 하나님과 결합하는 것이다. 

  커피콩을 갈고 커피 향을 내는 일은 나에게 정화의 길을 위한 의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은 마치 하나님께 나 자신을 내어 드려 그분이 ‘나’라는 딱딱한 콩을 부수고, 갈고, 빻아 나에게서 은혜의 향이 나게 하시는 일과 같다. 신문을 읽는 것은 나에게 조명의 길을 위한 의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은 마치 매일 접하는 비명소리와 재난과 사소한 일들을 바라보며,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이 내 영혼에 빛으로 비추게 하는 일과 같다. 

  나는 일상의 훈련들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는가? 그것들 속에서 정화의 길과 조명의 길과 일치의 길을 어떻게 발견할 수 있는가?

  ‘보통’ 사람들이 일치의 길을 훈련하도록 돕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그들의 일과에 또 다른 스케줄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보고 만지고 섬기는 일에서 이미 하나님께 동참하고 있음을 인식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고대의 길은 일상을 보내며 하나님과 만나는 것이다. 그렇게 하루를 보낼 때, 일상은 진정으로 구속된다. 

 

20장 깨어진 마음으로 

 

  참된 기쁨을 얻으려면 선한 인격이라는 일반 은총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또한 오래된 찬송가 가사처럼 ‘많은 위험과 수고와 유혹’ 속에서 긴 시간 동안 성실한 영성 훈련으로 다져진 ‘영혼의 견고함’이 필요하다. 

  고대의 길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은, 우리의 삶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어려울 때 암기나 암송과 같은 오래된 훈련이 실제로 당신을 구해 줄 뿐 아니라 판단력을 흐리지 않도록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 기도. “주 예수 그리스도여. 하나님의 아들이여.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

  고대의 길의 핵심은, 필요하지 않을 때 그러한 축적물을 쌓아 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어 사용하는 것이다.고대의 길은 우리가 마음으로 배워야 하는 길이다. 그리고 우리는 깨어진 마음, 또는 고통으로 인해 연약해진 마음으로 그 길을 가장 잘 배울 수 있다. 우리의 선택은 둘 중 하나다. 과거와 현재의 고통으로 우리 마음을 연약하게 혹은 깨어지게 만들거나, 우리 마음을 강퍅하게 하여 더 큰 고통을 초래하거나.  


차례

 

     1장 일상의 거룩함을 찾아서

1부… 길

     2장 왜 영성 훈련이 중요한가

     3장 훈련의 기원

     4장 예수님의 길

     5장 바울과 사랑의 길

     6장 나눔과 통합

     7장 오픈 소스 영성

     8장 가벼운 문제, 심각한 문제

2부… 훈련

     9장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훈련

     10장 관상 훈련

     11장 공동체 훈련

     12장 사명 훈련

     13장 우리는 어떤 순환 속에 있는가

     14장 앞으로 나아가는 삶

3부… 고대의 길

     15장 고대의 길

     16장 정화의 길

     17장 조명의 길

     18장 일치의 길

     19장 훈련에 대한 신뢰

     20장 깨어진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