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에세이_나는 런던에서 사람 책을 읽는다) 타인에게 귀 기울이다
타인에게 귀 기울이다
매일 사람을 만나 대화를 한다. 대화에서 항상 바쁜 건 입이다.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말하고 싶은 것이 많아 입이 근질근질하다. 내가 봤던 것, 경험했던 것, 꿈 이야기, 상사 이야기, 친구 이야기, 친구의 친구 이야기, 인터넷에서 봤던 시시껄렁한 농담, 가십거리, 음식, 영화, 남의 연애 이야기, 남의 아이 이야기, 엄마 친구의 딸 이야기 이야기의 주제는 끝도 없다. 누군가는 하루라도 책을 안 보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고 했는데, 나는 잠시라도 입을 열지 않으면 입이 영영 붙어 버릴 것처럼 끝없이 말을 한다. 열심히 말을 했었다.
어느 날, 말이 너무 많다는 생각에, 말을 줄여 보기로 했다. 그리고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바쁘던 입이 쉼을 누리자 귀가 머리가 마음이 바빠진다. 궁금하고 더 알고 싶고 잘 알고 싶어서 질문을 던진다. 그랬더니 더 좋은 이야기가 나온다. 잘 듣고 몇 마디 거들었는데, 헤어질 때 좋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뭔가 뿌듯하다. 그 때부터 어떻게 하면 좋은 질문을 할 수 있는지 책을 찾아봤다. 사람이 책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런던에서 사람 책을 읽는다’ 우와 누군가도 나처럼 사람을 책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 책을 펼치기도 전에 내 마음은 이미 푸욱 빠져있었다. 런던에 여행가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얼마 전 아내와 여행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었던 기억이 났다. 그들에겐 익숙한 공간, 우리에겐 낯선 공간에서 이어지는 친숙한 사람들과의 대화는 특별했었다. 여행지와 오랜 지인을 먼 곳에서 보는 반가움이 가득했다. 이 사람은 런던에서 어떤 사람을 만났을까?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 내가 런던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설레였다.
부제로 ‘사람을 빌려 사람을 읽는다. 어느 영국 도서관 이야기” 라고 적혀있다. <리빙 라이브러리Living Library>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서관에 와서 ‘책’을 빌리는 대신 ‘사람을 빌리는 것.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대화하고 소통하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서로 잘 알지 못해 가질 수밖에 없었던 타인에 대한 편견과 선입관, 고정관념을 줄이자는 의도로 기획된 행사이다. 사람 책을 만나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에 놀랐다. ‘리빙 라이브러리’와 ‘사람 책’에 꽂혔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은 보통 나와 연결고리가 하나씩은 있다. 직장, 가족, 취미, 공동체 등 유유상종이라고 나와 비슷한 것이 하나 있는 사람들과 만난다. 여기에서는 나와 연결고리가 하나도 없는 사람을 만난다. 그렇지만 내가 만나보고 싶은 사람, 끌리는 사람, 호기심이 이는 사람 책을 열어본다. 영국 사람 이야기이기에 낯설게 느껴질만도 한데,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은 저자가 자신의 이야기와 함께 버무려서 풀어내기 때문일 것이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까지 다 인터뷰로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다. 인터뷰를 통해 주로 이야기를 들었을 텐데, 거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더하자 새로운 남의 이야기가 된다.
책에는 싱글맘, 레즈비언, 우울증 환자, 혼혈, 채식주의자, 트랜스젠더 등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사람들이 나온다. 호기심으로 그들의 삶을 엿보게 되지만, 그들의 삶보다 더 크게 와 닿는 것은 그들의 알맹이다. 사회에서 다르게 보는 시각, 이질감을 이겨내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건 그들이 다름에 주눅들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알맹이가 있다. 싱글맘으로 살아가는 한 소녀 아니 어머니, 핑크빛 머리가 예사롭지 않은 그녀는 아이를 선택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기쁘게 살아간다. 다름이 어려움으로 다가올 수 있지만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인생에 알맹이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읽으면서 힘을 얻는다.
나는 어떤 사람 책이 될 수 있을까? 나의 무엇을 사람들이 열람해서 보려고 할까? 읽으면서 드는 생각이다. 많이 들어야지 생각했었는데, 어느새 다시 말이 많아진 나를 보면서 ‘넌 무얼 그리 말하고 다니냐’라고 되내인다. 요즘 이야기하고 다닌 것은 책, 이성교제, 신혼부부의 관계 맺기 등인 것 같다. 돌아보니 아직 여물지 않은 내가 남들에게 많이 이야기한 것 같아 부끄럽다. 다시 타인에게 더 귀기울이자 다짐해본다. 사람 책을 많이 읽고 좋은 사람 책이 되고 싶다. 한 번 보면 또 보고 싶은,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 대화하고 싶은 그런 사람 책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