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기독교

오늘이라는 예배 (티시 해리슨 워런 / IVP) 09_친구와 통화하기_회중과 공동체

SMK_JOO 2019. 12. 14. 23:29

09 친구와 통화하기 : 회중과 공동체

교회를 돌아보며 나는 안 그런데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하지만 나도 교회의 깨어짐에 한몫 하고 있다. 나라고 거기서 벗어날 수가 없다. 나는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 아니라 결국 나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셨다. 사람들이 교회를 보는 모습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교회를, 아니 나를 어떻게 보고 계시는가이다.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고 싶다고, 그 마음에 동참하고 싶다고 기도해본다.

 

  • 기도문과 말씀을 교독할 때, 나는 회중의 얼굴을 바라본다. 어떤 사람은 완전히 몰입해 있고 어떤 사람은 지루해하고 어떤 사람은 짜증이 나 있고 많은 사람이 지쳐 보인다. 또 한 주를 살아 냈다. 우리는 교회로서 서로에게 생명의 말씀을 들려주며 서로를 위해 이 자리에 있다. 다시금.캐넌 메리 마가드 헤이스
    “시편을 교송하거나 교독할 때 우리는 그저 서로 대화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께 말하고 있다. 서로에게 그리고 하나님께 그분의 약속과 우리의 불평을 상기하는 것이다. 우리는 도와 달라는 울부짖음을 서로 증언하며, 하나님께 우리 모두가 이 일에 함께하고 있음을 일깨워 드리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우정은 부름과 응답의 우정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우리가 누구이며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대해 주거니 받거니 반복해서 말한다. 

  • 단순한 개인적 신앙은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으로서 우리가 존재하고 행하는 모든 것은 교회 공동체에 영향을 미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셨다. 하나님이 세대를 거듭하여 그분의 교회 - 백성, 공동체, 유기체, 기관 - 를 구속하고 지키실 것이며, 지옥의 문조자 교회를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약속이다. 우리의 작은 이야기들은 시대를 초월한 모든 신자의 이야기로 감싸지고,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영원한 이야기의 일부가 된다.

  • 언젠가 흠 없이 온전하게 될 그리스도의 신부와 몸은 현재는 흠이 나고 깨져 있다. 개인 간의 갈등도 고통스럽지만, 교회가 주는 상처는 그보다 훨씬 깊고 복잡할 때가 있다. 교회의 죄는 구조적이고 은밀하게 퍼진다. 언제나 피난처였던 곳이 갑자기 거절과 비난의 장소가 되었다. 그렇지만 내가 다른 어디로 갈 수 있겠는가? 교회는 내가 공동체 안에서 복음을 듣는 곳이고, 말씀과 성례전을 통해 영양을 공급받는 곳이고, 그리스도의 몸을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곳이고,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로서 내가 형성되고 빚어지는 곳이었다.
    플래너리 오코너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교회를 위하는 만큼 교회 때문에 고통받을 것이다. …유일하게 교회를 견딜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그리스도의 몸이고 그것이 우리를 먹이기 때문이다.”
    나는 언젠가 교회가 이루게 될 모습에 소망을 둔다. 우리의 죄와 실패와 고통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우리는 아름답고 새로운 모습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임무는 언젠가 교회가 이룰 모습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금 교회의 모습에 정면으로 정직하게 마주하는 것,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그리고 그 몸을 통해 그리스도를 추구하는 것이다.
    램지는 우리에게 도전한다.
    그리스도인은 교회란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를 말하기 전, 먼저 그 자체의 실패와 방황하는 이들의 질문들 속에서 교회가 지금 여기에서 어떤 곳인지를 말해야 한다. 교회의 모순과 왜곡 그리고 완벽에 대한 기대와 함께, 지금 그것을 응시함으로써 우리는 있는 모습 그대로의 교회의 의미를 물어야 한다. 우리의 시선을 교회에 고정할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보지만 믿음의 눈은 그 이상으로, 곧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본다.
    교회의 죄와 실패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가 고통당하시고 죽으신 이유인 어두움과 추함을 본다. 그러나 또한 하나님은 죄인들 한가운데서 구속과 회개와 변화를 가져오실 수 있다는 빛나는 소망을 본다.
    문제를 한층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또 있다. 내가 교회 안에서 죄를 볼 때 나도 그 죄에 연루되어 있다. 나도 교회의 깨어짐에 한몫 거든다. 

  • 그리스도인의 믿음에서, 보편적인 것은 특정한 것을 통해 알 수 있고 추상적인 것은 구체적인 것을 통해 알 수 있다는 말은 철학적 원칙에 가깝다. 그리스도의 몸은 온갖 종류의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 중 일부는 불쾌하고 무례하며 독선적이고 엉뚱하다. 처음부터 교회 안의 관계에는 문제가 많았다. 우리는 사랑스럽고 좋아할 만한 사람에게 끌린다. 그러나 예수님이 함께 시간을 보내신 사람들, 예수님이 가장 끌린 사람들은 어딘가 좀 이상하고 단정치 못하며 소외된 이들이었다. 승리하는 삶을 살고 있던 이들에게는 삶을 뒤흔들어 놓는 이런 구세주가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실패하고 부적응하고 깨어진 이들이다. 이것은 좋은 소식이지만 동시에 굴욕적이다.
    하나님은 내 주변 회중석에 앉은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그들 안에서 기쁨을 찾으시며 나 역시 용기를 내서 그들 안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게 하신다. 이 세상에서 그분의 백성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보고, 그들 가운데서 살아가고 그들과 함께 말씀과 성례전을 받는다는 의미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함께 받은 구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