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기독교

오늘이라는 예배(티시 해리슨 워런 / IVP) 02 침대 정리 : 예전, 의례, 삶을 형성하는 것.

SMK_JOO 2019. 9. 4. 22:09

 

-> 나의 생활의 리듬은 나를 어디로 향하게 하는가? 나의 하루는 하나님을 향해 가고 있는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며 매일매일 나를 하나님으로 향하도록 습관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나에겐 매일매일 회심이 필요하다. 

 

  • 테크놀로지가 하루 중 비어있는 모든 순간을 채우기 시작했다. 깨닫지 못한 사이에 나는 천천히 습관을 형성해왔다. 그것은 지루함에 대한 지속적인 저항과두려움이다.
  • 아침에 대부분은 그저 가만히 앉아 하나님을 하루 안으로 초대한다. 침묵, 일종의 듣기. 일종의 그저 앉아있기.
    그러나 나는 기대감 속에 앉아있다. 하나님이 이날을 만드셨다. 주님이 이날의 이야기를 쓰셨고 이름을 붙이셨으며 이 하루의 목적을 붙들고 계신다. 오늘, 주님은 창조자이시며 모든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다. 엄마의 젖을 먹듯 나는 이 침묵을 받아 마신다.
  • 우리가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은 의례와 반복을 통해 우리 안으로 스며든다. 제임스 스미스는 반복적 실천이 우리가 어떻게 살고 무엇을 사랑할지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고 그 반복적 실천을 통해 '좋은 인생'에 대한 특정한 관점이 우리 안에 새겨진다고 설명한다.
  • 플래너리 오코너는 한 젊은 친구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이 시대가 자네에게 부딪혀 오는 만큼 자네도 강하게 그것을 거슬러 보게." 교회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별된, 급진적으로 대안적인 사람들이어야 한다. 우리 행위의 일차적 동기는 대부분 의식적 사고가 아니다. 보통은 선인지적으로 행동한다. 대안적 사람이 된다는 것은 다른 방식, 곧 우리의 사랑과 욕망의 방향을 하나님께 맞추는 실천과 습관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형성된다고 주장한다.
  • 습관과 실천이 우리의 사랑과 욕망을 형성하고 궁극적으로 우리가 누구이고 무엇을 예배하는지 결정한다.
  • 일요일에 우리는 교회에서 예전(의식화된 예배의 방식)에 참여하고 매주 예전을 반복하며 예전을 통해 변화된다. 문제는 '우리의 예전이 우리를 어떤 사람들로 형성하는가'다. 일요일의 예전은 우리에게 좋은 인생에 대한 특정한 생각을 가르치며, 우리는 실생활에서 그러한 비전을 품은 사람으로서 한 주를 살도록 보냄 받는다. 우리에게는 매일의 예전을 구성하는 매일의 습관, 즉 형성적 실천들이 있다.
    스미스는 우리에게 일상을 검증해 보라고 요청한다.
    따라서 문제는 이런 것이다. 우리가 알지 못한 채 습득하게 되는 습관과 실천이 존재하는가? 우리가 순진하게 몰입하고 있는-따라서 그것에 의해 형성되는-즉 더 주의 깊게 살펴보면 어떤 궁극적 목적을 지향하는 문화의 의례적 힘이 존재하는가? 우리가 참여하는 평범하고 반복적인 일상의 행위 중에서 우리가 주의를 기울인다면 좋은 삶의 특정한 전망을 지향하는 뚜꺼운 실천으로서 기능하는 것들이 존재하는가?
    우리가 시간을 보내는 방식, 눈에 잘 띄지 않고 귀에 잘 들리지 않는 그 방식이 우리를 형성한다.
  • 이 반복성은 바로 믿음의 리듬을 반영한다. 우리의 마음과 사랑은 우리가 반복적으로 행하는 것을 통해 형성된다. 복음과 교회의 풍요로움을 들여다본 뒤 그것이 지루하고 흥미롭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사실 그것은 우리가 비어 있기 때문이라는 의미다. 우리는 선함과 진리와 아름다움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들로 형성되어야 한다.
    우리가 교회로서 함께 드리는 예배는 특정 방식으로 우리를 형성한다. 생명을 주는 것을 가치 있게 여기는 사람들로 형성되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하루하루 회개와 믿음의 리듬을 통해 우리를 변화시켜 가는 세상 속에서의 존재 방식을 배우는 것이 필요한데 말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는 느린 습관을 배워야 한다.
  • 나의 아침 예전을 바꾸는 일의 핵심은 반복,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 내 앞에 놓인 일에 나 자신을 길들이는 것이었다. 이런 작은 방법으로 나를 훈련함으로써 이 평범한 하루 안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사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