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모임
TGIM 서면점_지금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_바울과 사도 요한의 이야기
SMK_JOO
2014. 10. 28. 13:13
TGIM 서면점_지금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13장, 14장 요약
13. 땅끝 비전과 선교:바울
성령과 사도행전_지상명령과 선교
복음서의 핵심이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는 선포라면 다음 이야기는 그 나라의 확장입니다. 성령께서 하신 일은 교회를 만드시고 그들을 증인으로 보낸 것입니다. 이들을 통해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퍼져 나갑니다.
전도자가 된 핍박자
선교 역사의 가장 극적인 이야기는 핍박자가 가장 위대한 전도자로 바뀐 일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바탕으로 끝까지 충성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부활로 새 시대가 열렸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 비전은 그가 사는 이유와 방향이었고 동력이었습니다. 그들의 땅끝 비전은 하나님 나라를 향한 성경의 가장 큰 비전과 동일 선상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셨듯이 복음 전파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며 재림을 바라보는 눈이 열린 것입니다.
선교_하나님 나라의 확장
지금은 우리가 땅끝 비전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 그 비전이 너무 좁게 이해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선교를 복음의 지리적 확장으로 국한시킬 경우 시야가 좁아집니다. 교회가 이스라엘 백성이 실패한 선교적 정체성과 역할을 이어받은 공동체라는 사실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교회는 열방 중에 “대조 사회”(contrast-society)로서 모든 장벽을 허무는 사랑의 빛이어야 합니다. 선교는 언제나 복음의 전파입니다. 교회가 모든 역사, 문화, 사회 상황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소명 공동체라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인종과 문화를 넘어서
복음의 문화적 확장. 바울의 땅끝 비전에는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 시키는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고후 10:5)
세대를 넘어서
바울은 공간적 시야만 넓었던 것이 아니라 시간의 끝을 보는 안목을 가진 진정한 산견자였습니다. 다음 세대의 지도자를 육성하는 비전도 있습니다. 바울은 인생의 끝이 다가올수록 다음 세대를 향한 비전을 중시합니다. “내가 말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내가 전한 복음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는 것이 그의 멘토링의 핵심이었습니다.(딤후 2:7-8) 바울뿐 아니라 사도들과 초대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그 선교적 과제를 지리적, 문화적 장벽을 넘어 다음 세대를 향해 이어 나갔습니다. 아브라함 카이퍼의 말처럼, 창조 세계 가운데 단 한치도 그분의 것이 아닌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와 비전이 끊어지면 다음 세대는 다른 세대가 되고 맙니다.
세속을 넘어서
복음은 새로운 사상이 아니라 변화된 삶입니다. 개인의 삶뿐 아니라 공적 생활 속에서 그래야 합니다. 이런 삶은 핍박과 고난을 불러올 것이지만 영광의 길입니다. 물론 그 영광은 믿음과 인내로 바라보며 나아가야 할 비전입니다.(롬 8:22-24)
중단없는 전진
바울은 세상 삶에 집착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임을 알고 그렇게 하고 싶어 했지요. 그들의 비전은 하나님 나라에 있었습니다. 그들의 소망은 자신들을 위해 준비된 그리스도의 품에 안기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소망과 비전이 현실 도피나 혐오의 결과이거나 원인이 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현실에서의 고난과 역경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동기와 근거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을 때 눈이 멀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눈을 뜰 때 영적 통찰과 세상 끝을 바라보는 비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의 비전은 땅끝에 닿아 있었습니다. 죽음을 넘어 부활의 세계를 바라보았습니다. 이들에게 하나님 나라는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앞에 있었습니다.
14. 시온의 비전_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사도 요한
비전과 소망
요한계시록은 로마 제국의 핍박이 극에 달한 시기에 고통당하는 교회들에 보낸 편지입니다. 성경은 이야기며 비전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그분의 뜻을 따라 지으실 뿐 아니라 타락 가운데서 회복하시는 드라마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과 복이 우리를 통해 온 세상에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전히 성취됩니다. 그 비전(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은 세상의 소망입니다.
소망의 실상
영생의 비전은 이 찬송(새찬송가 436장_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의 고백처럼 지금 여기서 그 “영생을 맛보며 주안에” 사는 능력을 줍니다. 소망의 근거는 언제나 믿음입니다. 믿음이 바라는 것의 실상인 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할 때만 가능합니다. 히브리서 11:1은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소망은 실상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이런 소망은 눈을 밝혀 줍니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 밝아진 눈은 망원경을 쓴 것처럼 멀리 있는 것을 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가져오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보입니다. 믿음으로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훈련이 하나님 백성들의 삶입니다. 영생의 소망은 믿음 가운데 맛보며 살지만 아직도 기다려야 할 대상입니다. 그것은 믿음으로 체험되어야 하기에 인내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마침내 임하는 거룩한 성_하나님 나라
이 비전의 중심은 하늘 보좌이빈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계 11:15).
비전의 종결
요한계시록은 승리의 비전입니다. 그들은 모든 고난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결국 부활하신 구주 예수님의 승리를 보았습니다. 이 책의 목적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승리의 모습을 계시하여 믿음을 볻돋우고 용기를 주려는 것입니다.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재림을 소망해야 할 첫째 이유는, 그날에 하나님의 계획이 완성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재림의 때에 우리를 구원하신 이를 기쁨 속에 만나게 될 것입니다.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매일을 성실하게 살아갑니다. 재림에 대한 소망은 매일의 삶 속에서 그것을 바로 예비할 수 있는 힘을 줍니다. 그 소망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강할수록 지금 여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나라에 더욱 힘있게 헌신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전은 거기 머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삶으로의 부르심입니다. 비전도 소명과 함께 옵니다. 비전을 소명으로 받아 살 때 더 큰 비전이 열립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전이 그것입니다. 이 세상을 바라볼 때 거기서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볼 눈이 열립니다. 소망은 앞을 향합니다. 주관적이지 않고 믿음에 근거합니다. 역사를 이끄시는 하나님 손에 자아를 맡기는 순종에서 비롯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아주 먼 옛날 하늘에서 시작된 이야기의 끝이 어떻게 될지 보여주는 비전입니다. 그것은 창조, 타락, 구속의 비전이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 가운데 완전히 이루어져 만물이 충만한 복을 누리는 세상의 비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