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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라는 예배 (티시 해리슨 워런 / IVP) 08_교통 체증 버티기_예전의 시간과 서두르지 않으시는 하나님 본문

책 이야기/기독교

오늘이라는 예배 (티시 해리슨 워런 / IVP) 08_교통 체증 버티기_예전의 시간과 서두르지 않으시는 하나님

SMK_JOO 2019. 11. 2. 23:48

오늘이라는 예배(티시 해리슨 워런 / IVP)

08. 교통 체증 버티기 : 예전의 시간과 서두르지 않으시는 하나님

-> 빠름과, 효율, 생산적이 최고인 세상을 살아간다. 예수님을 믿는 삶은 세상과 너무 다르다. 예배는 생산적이지 않고, 기도는 효율적이지 않다. 하나님은 빠름과는 담을 쌓은 것만 같다. 하지만 그것은 내 관점으로 봤을 때의 일이다. 하나님의관점에서는 언제나 적절하고 최고의 타이밍이다. 하지만 언제나 나의 조급함이 모든 것을 망친다. 그런 나에게 예배와 교회력, 인내와 갈망은 하나님을 향하게 한다. 그렇게 조금씩 세상이 아닌 하나님과 함께 발 맞추어 가본다.

  • 실제로 나는 내 시간을 통제하지 않는다. 매일 나는 기다린다. 도움을, 치유를, 장차 올 날들을, 구조를, 구속을 기다린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처럼 죽을 날을 기다린다. 그리고 나는 영광을, 장차 오실 왕을, 몸의 부활을 기다린다. 그리스도인은 기다리는 사람이다. 우리는 한계적 시간, '이미'와 '아직'을 산다. 그리스도는 오셨고, 다시 오실 것이다. 우리는 중간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기다린다. 
    그러나 일상에서 나는 초조해하는 습관을 키운다.
    신학자 한스 우르스  발타자르는 모든 죄의 뿌리가 성급함이라고 말한다그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인내의 핵심 역할을 이렇게 설명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시간에 인간이 모든 좋은 것을 갖도록 하셨다그렇기에 모든 불순종과 죄악은 본질적으로 시간을 따르지 않는  있다그런 까닭에 하나님의 아들이 질서를 회복하시는 것은 그러한 미성숙한 자식의 가로챔을무효화하는 것이어야 했고영원을 향해 뻗은 손을 뿌리치는 것이어야 했고영원으로의 거짓되고 간편한 이동에서참되고 느린 시간 안의 제약으로 회개하며 돌아오는 것이어야 했다인내는 기독교의 필수 요소이며기다리고 참고 버티고 끝까지 견디는 힘이며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려 하거나 영웅과 타이탄 흉내를 내면서 힘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는 대신 영웅주의 너머에 놓인 바로 끌려가는 양의 온순함을 연습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로서 나는 어렵더라도 인내의 실천을 배워야 한다.

  • 교회력을 알게 되었을 때 진짜 시간을 발견했다고 느꼈다. 시간의 구조는 예배에 따라 결정되었다. 교회력 안에서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삶의 리듬을 배운다. 매주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과 안식을 재연한다. 매년우리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다시 이야기한다. 대림절, 성탄절, 주현절은 메시아를 갈망하는 하나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탄생, 그리고 천천히 그분이 온 세상의 왕으로 드러나는 이야기다. 사순절, 부활절, 오순절은 그리스도가 받으신 시험, 타락한 세상에서의 삶, 고난, 죽음, 부활, 승천,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진 성령의 오심과 교회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다. 안식일을 지킬 때,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 후에 안식하신 것을 되돌아볼 뿐 아니라 하나님이 재창조를 마치실 때 올 안식, 곧 앞으로 올 쉼을 고대한다. 우리는 이야기가 끝나기를, 모든 것이새롭게 되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함께 기억한다. 

  • 우리는 조급한 사람들이다. 지금 당장 행복을 원한다. 지금 성취와 만족을 느끼고 싶다. 시간은 단지 우리가최대한 활용하려고 애쓰는 소모품일 뿐이다. 
    도로시 바스는 [하루를 받기]에서 시간이란 일일계획표의 네모 칸처럼 우리가 소유하고 관리하는 어떤 것이라는 생각이, 시간이란 일차적으로 길들이고 사용하며 지배해야 하는 힘이라는 거짓된 믿음으로 우리를 어떻게 이끌어가는지 설명한다.
    시간은 우리가 휩쓸려 따라가는 강물이다. 그것이 실재다. 시간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예배의 수단이다. 시간은 통제하고 관리하며 소비하는 소모품이 아니다. 시간은 나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시간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그분이 행하신 일, 그분이 하고 계신 일, 그리고 그분이 하실 일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기다림의 세상에서, 모든 창조 세계와 함께 시간도 무언가의 탄생을 기다리며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근본적으로 나의 현재적 실재는 장차 올 것을 지향한다. 나는 어딘가로 가는 중이다. 따라서 기다림은 미래를 지향하는 믿음의 행위다. 그러나 우리의 소망의 확신은 과거에, 나사렛 예수의 인격 그리고 그분의약속과 부활에 근거한다. 그리하여 시간과 마찬가지로 기다림은 시간의 축이신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신다. 

  • 그리스도가 행하신 일 덕분에 우리는 기대하며 기다린다. 우리는 시간이 흐르면서 불가피하게 찾아오는 절망(재에서 재로, 먼지에서 먼지로)을 믿음(우리가 그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것이니)으로 대체한다. 우리의 상상력은 장차 올 것, 하나님이 모든 것을 바로잡으실 미래의 영광에 고정된다. 교회력을 지키는일은 조급함의 문화에 저항하도록 우리를 형성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면, 참으면서 기다려야 합니다."라고 말한다(롬 8:25). 교회의 시간을 따르면 세상의 시간과 충돌한다. 

  • "나는 항상 내가 선물을 기다린다고 느꼈어. 그렇지만 기다림 자체가 선물이라는 걸 알았지"
    로버트 윌켄은 초기 교부 테르툴리아누스에 대한 연구에서 인내심과 소망의 관계를 강조했다.
    인내의 유일한 표지는 참을성이나 결연함이 아닌 소망이다. 인내는 소망을 품고 사는 것이다. 인내는 부활에근거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만들고 계시는 미래를 지향하는 삶이며, 그 표지는 열망, 즉 현재의 패악에서 벗어나는 것보다는 장차 올 좋은 것에 초점이 맞춰진 열망이다.

  • 인내와 더불어 그리스도인의 또 다른 특징은 갈망이다. 일과 기도와 섬김의 시간을 통해 자비롭고 선교적으로 성실하게 살아 낸 우리의 작은 일상은 아직은 볼 수 없는 열매를 언젠가 맺을 것이다. 미래를 지향하는 기독교의 시간은 우리가 길 위의 사람들임을 일깨워 준다. 우리로 하여금 장차 올 것을 참을성 있게 기다리면서도 결코 우리의 텔로스를 포기하지 않는 대안적 사람들로 현재를 살아가게 해 준다. 교회력은 우리가 다른 이야기에 의해 살아가는 사람들임을 일깨워 준다. 우리는 단지 다른 이야기에 의해 살아갈 뿐 아니라, 그 이야기 안에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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